8. 퇴행
퇴행이란 용어는 자체의 의미처럼 다소 빛 바랜 느낌을 주는 용어이긴 하다. 발달과정상에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으로 여행한다는 의미를 떠는데, 분석적 상황에서는 방어를 해제하고 보다 기본적인 정서적 수준에서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최근에는 퇴행의 방어적인 성격보다는 방어벽을 열게되어 한결 편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깊고 원초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상태의 의미로 이해되어지고 있다. 분석에서 카우치를 사용해 환자가 가장 편안한 자세에서 이야기하게 하는 것도 이러한 상태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려는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퇴행이란 분석자가 자신의 고통을 방어하려는 기제를 내려놓음으로써 고통을 유발한 깊은 감정들에 분석가와 함께 가 닿을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될 때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가능성, 치료적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누구나 추측할 수 있듯이 고통 때문에 생긴 방어를 해제하는 것은 고통을 더 느끼게 할 수밖에 없다. 분석가와의 관계가 깊어지고 퇴행이 일어나면서 분석자의 깊은 감정들이 나오면 감정의 기복과 불안이 생겨난다. 십지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크거나 정신적 혼란이 큰 환자들의 정우는 자신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 같거나 분석 또는 심리치료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가지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고통의 강을 다시 건너지 않고서는 그 근원이 되는 곳에 돌아가 작업을 하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갈 수 없다는 점이다. 분석가가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은 분석자의 퇴행이 병리적 방향을 향하거나 너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조심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분석자의 퇴행은 분석가에게 표현하는 감정과 태도의 전반적인 강 도의 증가로, 또한 분석적인 틀과 경계를 약화시켜서라도 분석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함께 합의한 분석 회기의 정해진 시간을 넘어 더 이야기하고자 하거나, 분석회기와 회기 사이에 전화나 메시지를 하는 횟수가 서로 간에 불편함을 유발 하는 수준으로 증가하거나, 심지어 분석자 자신의 요구가 분석가에게 수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 자신을 해질지 모른다는 암시나 협박을 분석가에게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누군가의 고통과 필요를 보면서 그것에 무심할 수 없는, 특히 분석이나 심리치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성격적 특성을 고려하면, 분석자가 퇴행의 상태에서 분석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우에 이에 응하지 않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분석자의 퇴행은 분석가 또한 심적으로 불안하고 긴장하며 되행하게 한다. 그래서 분석가가 어느선까지 경계를 지켜야 시로에게 도움이 되며, 분식자가 자신의 고통과 강렬한 감정들을 다루어갈 수 있는 능력과 경계를 세워나갈 수 있는지 분석가로서도 판단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엄마와 아이의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분석가와 분석자 관계의 핵심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엄마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아이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고, 아이도 엄마를 관 잘하면서 자신을 지키는 태도를 길러갈 수 있다.
9. 실연
실연이란 특정한 경험이 당사자에게 언어로 구성해 표현할 수 없는 상태로, 행동이나 비언어적인 관계의 맥락을 통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자와 분석가 간에 일어나는 핵심적 상황을 설명해줌으로써, 최근의 정신분석 흐름에서 주목되어지는 부분이다. 이 전에는 분석자가 자신의 주된 문제, 갈등이나 숨겨진 소망을 언어로 표현하는 대신 행동화하는 것을 주로 가리켰다. 이는 분석자의 병리와 초기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분석자가 행동화한 병리와 갈등으로 인해 분석가는 다소 심적인 피해는 입을 수 있지만, 최대한 전문가로서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행동화된 내용을 해석하고 바로잡아주었다. 이에 비해 최근의 정신분석에서는 실연의 경험 자체가 치료적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강화되었고, 분석가의 참여와 역할 또한 중요한 부분으로 조명되었다. 대개 말과 사고를 통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직 정서적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변화되지 못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패턴이다. 대체로 그 분석자 개인의 핵심적인 이슈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분석가의 특성이나 해소되지 못한 심리적 어려움도 실연 상황이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분석 관계 속에서 분석자의 문제가 굳이 자극되고 행동이나 맥락으로 나타날 때, 상대방인 분석가가 어떤 사람이며 어떠한 특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 항상 열쇠와 자물쇠처럼 분석자의 특징과 맞물려서 반응을 끌어낸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실연 상황을 다루어 치료적 변화를 끌어내는 가능성도 분석가가 분석자와의 관계를 보다 일방적 치료관계로 보느냐, 아니면 상호 주제적인 분석 관계로 보냐에 따라 달라진다. 분석자의 전이와 분석가의 역전이가 얽혀서 이러한 상황을 만들며, 이를 풀어서 변화시키는 것에는 두 사람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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